파시즘과 민족주의를 헷갈리는 똘만이들을 위해서

전체주의
전체가 있으므로 개인이 존재한다는 논리에 따라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권력사상·국가체제 또는 그러한 체제를 실현하려는 운동의 총칭. 역사적으로는 특히 192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서 이탈리아·독일·일본 등에 등장한 파시즘 사상을 가리킨다.

 

사회주의
협동적으로 자유평등한 사회를 형성해 사리사욕·타인이 지배하는 불공정·빈곤 등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려는 사상 사회운동·사회체제를 총칭하여 이르는 말. 그 원류는, 사유재산 없는 협동생활을 찬미한 스토아철학이나 그리스도교 등의 교의(敎義)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 말기 농민투쟁의 이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사회주의란 계층및 계급사회 즉 신분사회를 타파하여 평범한 사회를 말하는것(일종의 이상주의자) 독일의 나치스는 사회주의국가였음

 

파시즘

국가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개인 생활 전반을 정치·사회·문화·경제에서 통제하려 하는 현상이다. 파시스트 국가는 생산재를 제어한다. 파시즘은 자국의 국민, 국가, 인종이 이를 구성하는 개인, 기관, 무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찬양한다. 파시즘은 대중적 포퓰리스트 수사법을 사용하여 과거의 영광 재현을 위한 영웅적인 노력을 주문하며 단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여 심지어 개인 숭배까지 이른다.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생아가 파시즘입니다 즉 변형된 사회주의입니다

 

배타주의(민족주의(民族主義) 내셔널리즘(nationalism)

민족(nation), 국민 또는 민족적 정체성을 사회 조직의 근본적인 단위로 삼는 이념이며 이에 기반하여 몇 가지 정치적 주장을 한다.

제일 중요한 것으로는 "민족이 국가를 합리화하는 유일무이한 근간"이라는 주장과 "개별 민족은 국가를 형성할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형태를 갖출 때 민족주의는 보편적인 이념이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또한 민족주의적 움직임의 특수 이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민족주의는 특정 민족의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

민족주의는 애국주의와 지나친 애국주의로 생기는 국수주의와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다.

 

국수주의(이태리 파시스트  북한체제쿠바체제)

국가가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개인 생활 전반을 정치·사회·문화·경제에서 통제하려 하는 현상이다. 파시스트 국가는 생산재를 제어한다. 파시즘은 자국의 국민, 국가, 인종이 이를 구성하는 개인, 기관, 무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찬양한다. 파시즘은 대중적 포퓰리스트 수사법을 사용하여 과거의 영광 재현을 위한 영웅적인 노력을 주문하며 단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여 심지어 개인 숭배까지 이른다.

 

답변

쉽게 설명한다면 민족주의는 혈통중심 타인종 배척 으로 다문화가정이나 혼혈에대한 거부감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북한 난민도 배척하는 경우입니다

국수주의  북한체제를예를들면 이해가 빠를듯  어버이 수령 김정일 동지 만세이런 구호는국수주의에서 나옵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우리민족이 아니면 모든것을 거부하는사상입니다  조선족이나 북한새터민들까지 배척하는 태도가 바로 배타적 민족주의입니다

 

박재범군 사건은 우리의민족정서의 현주소를보여준것입니다  왜우리는군대가는데  재범은 군대안가고 미국시민권자이며 우리나라에와서 욕하고 가수하면서 돈을버냐 일종에 피해의식이며 자격지심입니다 내가 가면 너도 가야하는게 공평한것인데 너는예외이면이를인정하지않는 우리들의 문화 입니다 민족이므로 혈통이므로 모든게 같아야한다는논리 입니다

그리고 내가못하면 너도못해야한다는 피해의식

출저: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2&docId=60887485&qb=67Cw7YOA7KCBIOuvvOyhseyjvOydmA==&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gTC6DB331yGssuINtLKssv--198013&sid=TWkIZy3CaE0AAEYtHq0

by 교육문제 | 2011/02/26 23:23 | 트랙백

경상도 전라도 지역감정의 원인 [펌] 윤활유님글

이 게시물은 아직도 대한민국 최고의 '망국병'인  '지역주의' 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본 게시물을 작성한 본인은 경상도인임을 분명히 밝힙니다.그러니 이 글에서는 지역감정을 들먹이며 글의 사실여부를 부정하려는 이들이 없길 바랍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대중은 빨갱이''

 

 

 

 

''전라도는 빨갱이 소굴''...

 

 

 

 

 

 

 누군가에 의해  500만 호남인들의 핏속에 새겨져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저주받은 낙인....

 

 

반세기가 넘게 남북으로 갈라진 체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이 좁은 땅에서, 이 '저주받은 낙인' 을 새긴 자들에 의해 또다시 동서로 갈라져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우리 민중들...

 

.

 

오늘 여러분에게 누가, 왜, 언제부터 도대체 무슨 의도로 호남인들에게

'빨갱이'라는 저주의 낙인을 찍었는지, 또 그로인해 우리 민중들의 가슴에 속에  잉태된 '증오의 씨앗' 을 그들이 어떻게 이용했는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

  1971년 4월,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부산유세장.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꽉 들어찬 유세장 곳곳에서 김대중의 연설을 들은 부산시민들의 감탄사가 이 곳 저 곳에서 터져 나온다.

 

 

.

.

 

 

 

 

 ''아이고! 와, 우리 경상도에는 김대중이 같은 인물

 

  이 없노...''

 

 

 

 

 

''전라도에서 대통령감 났다.''

 

 

.

.

 

  

 

 

 

아마 여러분들은 김대중에 대해서 부산시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

.

.

.

.

 

 

.

            하지만 이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

 

 

 

 

 

.

        

 

 

. '40대 기수론'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인기는 부산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가히 '열풍 '이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

.

.

.

.먼저 그 당시의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군부세력)

 

 

69년부터 박정희는 3선개헌을 통해 종신대통령을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재야와 언론의 반대, 학생운동은 거세게 일어났고, 70년 11월에 열악한 노동현장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전태일 청년의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태일열사의 장례식)

 

이러한 상황속에서 민심은 이미 박정희에게서 등을 돌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마음이 김대중 후보의 등장과 함께 현실로 다가왔었습니다.

 

 

.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거나 김대중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 이르자 박정희와 공화당 그리고 매국언론들은 삼위일체가 되어 영남인의 가슴속에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망언을 공공연하게 유포하기 시작합니다.

 

 

.

 

 

 

 

.

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의 망령' 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 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친사람''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김대중 후보가 이번 선거는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라고 똘똘뭉치자고 했으니 우리도 뭉치자''

-1971년 4월 18일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이 때까지만해도 지금의 한겨레의 역할을 했습니다.

.

 

.

.

.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짓된 비열한 낭설을 영남 전역에 퍼뜨리면서 드디어 1971년 제 7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박정희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부산지역의 득표를 주목해주십시오)

 

 

 

 

결과는요? 

 

 

네. 맞습니다. 잘 들어 먹었죠.

 

하지만 그 결과는 94만표 차이로 박정희가 이겼지만 실질적으로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승리' 였습니다.

 

 

당시 야당 선거 참관인이 경상도에서 협박과 수작에 발이 묶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공연하게 '선거조작'이 이루어졌고 또 이른바 '피

 

아노표'-손에 먹을 묻히고 투표용지를 더럽혀서 무효표로 만든것-가 엄청

 

나게 많이 나왔으며, 60만 군대의 표가 '자동으로' 박정희표가 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94만표차이 라는 것은 박정희에게서 민심이 떠났음을 의

 

미했고, 이는 박정희가 '유신' 을 시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박정희의 왕국에서 가장 큰 위협 인물이 되어버린 김대중은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고

 

 

 

                 (김대중납치사건-중정에 손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긴후의 인터뷰장면)

  

  

유신정권의 암살시도에서 살아남은 김대중은

 

 

 

이 때부터

 

 

                

     

빨갱이 라는 '저주받은 낙인'을 부여 받습니다. 덧붙여 전라도도

 

 

 

빨갱이소굴 이라는 '특별자치구'의 명칭까지 부여받죠...

 

 

.

 

 

 

......이 후 부터 김대중의 고난과 호남인에 대한 편견이 시작되어 오

 

날까지 끝없이 반복됩니다.

.

.

.

.

.

 

                

 

 

 

이후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서울의 봄'

 

그 짦은 시간 이후에 우리 민중들은 또 다시 권력을 쟁취하지 못하고...

 

 

 

 

 

 

 

 

또 다시 신군부 세력에게 민주주의를 억압당하게 됩니다

 

 

 

    

 

 

 5.16쿠데타의 후계자들 답게 이들 또한 그들의 선배가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또 다시 김대중과 호남인을 빨갱이로 만들고

 

 

 

 

전라도를 빨갱이 소굴로 만드는 것이죠...

 

 

 

 

 

 

         

(청주교도소에 수감당한 김대중과 면회온 가족들)

 

 

 

 

 

 

 

 

 

그 이후에 이들 신군부에 의해 우리 헌정사상 최고 비극이 자행됩니다.

 

 

 

           

 

 

 

 

                 

 

 

 

 

     

 

 

 

 

 

 

         

 

 

 

 

 

      

 

 

 

 

 

         

 

 

 

 

 

        

 

 

 

 

 

            

 

 

 

 

 

 

 

 

 

         

 

 

 

 

       

 

 

 

 

 

 

 

 

 

 

 

 

 

 

 

 

 

 

 

 

          

13
0
윤활유님의 글

by 교육문제 | 2010/12/10 15:31 | 트랙백

인터넷에 논리적인 오류



1.순환논법

ex)
1.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어째서?
2.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에 쓰여있어.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맞아.

주장 자체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
즉,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자기 자신의 주장을 근거로 삼는 것.




2.무지에 의한 논증

ex)
1.귀신이 없다는 증거가 없다.
2.그러므로 귀신은 있다.

반대되는 증거가 없으므로 이 주장은 옳다고 주장하는 것.
반대되는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 주장이 맞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알 수 없는 것]이다.




3.권위에 의한 논증

ex)
1.유명한 정치인이 이 가설은 옳다고 주장했다.
2.그러므로 이 가설은 옳은 것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거나, 혹은 전문가라 할지라도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는 보증을 할 수 없다.
특히 속기 쉬운 오류로써, 전문가가 해당 분야에 대해 과연 얼마나 보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4.인신공격에 의한 논증

ex)
1.그 사람은 학벌이 좋지 않다.
2.그러므로 그 사람의 주장은 옳지 않다.

3번과 비슷한 오류. 그 사람의 지위나 속성이 어떻든 그 사람의 주장과 반드시 연결된다는 법은 없다.
역시 범하기 쉬운 오류로써, 주장은 그 주장만을 가지고 판단해야한다.




5.정황에 의한 논증

ex)
1.그 사람은 예전에 중소기업에서 일했었다.
2.그러므로 그 사람이 대기업에 대해 비판했다면, 이것은 믿을 만한 주장이 아니다.

3, 4번과 비슷한 오류. 그 사람이 그런 주장을 펼치게 된 이유 혹은 과거가 어떻든 간에,
그 주장의 신뢰 여부와는 무관계하다.




6.군중에 의한 논증

ex)
1.일본놈들은 죄다 나쁜놈들이야! 예전에 우리나라를 침략했었어! 다들 알잖아!
2.그러므로 지금 이 일본놈이 하는 말도 죄다 틀린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걸!

군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가장 단순한 오류.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공감대를 만들고,
과격하고 감정적인 말을 씀으로써 논리적인 판단을 회피한다.




7.연민에 의한 논증

ex)
1.이 분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버림받아 갖은 고생을 하고...
2.그렇게 슬픈 일을 많이 겪으신 분이니 이 분이 하는 말은 틀림없을 겁니다.

6번과 비슷한 오류. 연민이나 동정심에 호소하여, 해당 주장을 반대하면 양심에 가책이 오도록 만든다.




8.힘에 의한 논증

ex)
1.순순히 금을 넘기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언어 혹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오류.




9.논점 일탈의 오류

ex)
1.왜 게임을 불법복제하냐고?
2.요즘 게임은 너무 비싸. 아니, 요즘 물가 자체가 너무 높아. 그래서 우리나라가 힘든 거야.

원래 토론하고 있던 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주제를 갖다붙이는 오류.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논리적인 판단을 회피한다.




10.선언지 긍정의 오류

ex)
1.그 사람은 엑박이나 플3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그런데 그 사람이 엑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3.그러므로 그 사람은 플3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엑박과 플3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 오류.
서로 베타적이지 않은 두 명제는 양립할 수 있다.




11.전건부정/후건부정의 오류

ex)
1.[대한민국 국군 현역 사병]은 전부 [남자]다.
2.그러므로 [남자]는 전부 [대한민국 국군 현역 사병]이다.

조건 논증의 경우, 참인 명제를 반대로 하면 오류가 된다.




12.복합질문의 오류

ex)
1.당신, 어제 그 여자랑 만나서 바람 폈지?
2.아니, 난 바람 같은 거 안 폈어.
3.그럼, 어쨋든 어제 그 여자랑 만났다는 건 인정하는 거지?

[어제 그 여자랑 만나다], [바람을 피다]라는 두가지 사실을 질문함으로써,
상대방이 부정하더라도 한가지 질문은 긍정했다고 생각해버리는 오류.




13.거짓원인의 오류

ex)
1.예전에는 경제 성장율이 높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2.또 예전에는 통기타가 유행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
3.그러므로 통기타가 유행하면 경제 성장율이 높아지겠군!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전혀 무관한 원인을 갖다붙이는 오류.




14.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ex)
1.그 사람은 가난하다.
2.왜냐하면 그 사람은 궁핍하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주장에 대한 근거로, 결국 똑같은 의미일 뿐인 말을 반복하는 오류.
의미는 똑같으나 어휘만 바꿔서 늘어놓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1번의 순환논법과도 비슷하나 좀 더 포괄적인 개념.




15.우연의 오류

ex)
1.사람을 죽이면 살인죄다.
2.그러므로 전쟁에서 적군을 죽인 군인은 살인죄다.

일반적인 주장을, 특수한 경우에도 적용시키는 오류.




16.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ex)
1.그 대학을 다니는 이 여자는 된장녀다.
2.그러므로 그 대학에 다니는 여자들은 전부 된장녀다.

15번과는 정반대. 특수한 경우를, 일반적인 주장으로 만드는 오류.




17.도박사의 오류

ex)
1.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크리스마스에 눈이 안왔다.
2.그러므로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 것이다.

확률 이론을 무시한 오류. 과거의 사건과 이번의 사건은 독립된 확률이 적용된다.




18.애매어의 오류

ex)
1.학살은 무저항의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2.그런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총을 쏠 때 저항을 했다.
3.그러므로 우리가 한 일은 학살이 아니다.

고의든 우연이든, 단어의 의미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오류.
애매하고 포괄적인 단어에 대해, 자신의 임의로 의미를 규정하면서 발생한다.




19.애매한 문장구조의 오류

ex)
1.나는 그녀와 그에게 친절히 대했다.

[나]가 [그녀와 그]에게 친절히 대했는지, [나는 그녀와]함께 [그]에게 친절히 대했는지 애매하다.
문장의 뜻이 애매해서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만드는 오류.




20.강조의 오류

ex)
1.친구들을 때리지 마라.
2.그럼 친구 아닌 사람들은 때려도 되겠군!

특정한 단어 등을 강조함으로써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오류.




21.결합의 오류

ex)
1.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2.그러므로 그 사람이 사는 동네도 좋은 동네일 것이다.

부분의 특징을 전체에도 적용시키는 오류.




22.분해의 오류

ex)
1.그 동네는 좋은 동네다.
2.그러므로 그 동네 사는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일 것이다.

21번과는 정반대. 전체의 특징을 부분에도 적용시키는 오류.

by 교육문제 | 2010/12/01 14:52 | 트랙백

일본 역사왜곡의 현실과 식민사학

2010년 9월 5일 한일병탄 100주년 특집으로 방영된 역사스페셜









by 교육문제 | 2010/11/09 23:00 | 트랙백

민족말살정책 [네이버 백과사전 펌]

요약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뿌리를 말살하려 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

본문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을 강제 병탄()한 후, 강력한 식민지 탄압정책을 채용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 ‘헌병경찰정치’라 하여 헌병경찰을 전국에 배치하여 한국의 민족운동을 탄압하고 통제를 강화하였다. 그러다가 3·1 독립운동이 발생한 후로는 정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식하고 유화정책을 폈다. 즉, 한국인의 문화생활이나 교육 등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모두가 식민통치의 한 수단일 뿐, 그들의 식민지 통제정책의 근본에는 변함이 없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본 군국주의는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전쟁에 몰입하게 되었다. 1931년에 만주사변(滿)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으며, 1941년에는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미국의 하와이, 동남아시아 등을 공격하였다. 전쟁으로 국력의 소진을 들어내면서 그들은 식민지 통치에 새로운 마각을 들어냈다. 즉, 한국을 전쟁물자 보급창으로 사용하려고 하여 이른바 ‘병참기지화’정책을 펴나가면서, 이를 위해서 식민지를 아예 일본의 일부로 만들려는 무서운 ‘민족말살정책’을 수행해나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있는 것보다는 한국인도 일본인과 똑같은 동일국민 내지는 동일민족의 처지로 개조할 필요가 있었다.

식민통치 제2기에 해당하는 1919 ~ 1931년 사이에 일본과 한국, 만주를 융화하여 서로 가깝게 지내자는 의미로 내선융화( 일본과 조선이 융화해야 함), 선만일여(滿 조선과 만주가 하나와 같음), 일시동인( 일본과 조선이 동질성을 가짐) 등의 조금은 부드러운 강령을 내세웠다. 그러나 제3기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정책을 좀 더 강화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32년부터 《조선사()》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동일민족이라는 동조동근론()을 주장하고 내선일체( 일본과 조선은 하나임)설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일본민족과 한민족은 시조신인 ‘천조대신’()의 적자과 서자로서 하나의 조상을 가진 같은 민족이라고 역사를 날조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인을 ‘황국신민화()하려고 하여, 일본 왕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였다. 전국에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매일 정오에 신사를 참배토록 하고, 거기서 황국신민서사()를 선서하도록 하였다. 한편,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라고 강요하여 이른바 동방요배()를 실시토록 하였다. 나아가 모든 가정집에는 카미타나()라고 하는 신이 들어있다는 상자를 만들어 모시고, 거기에 수시로 경배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일체의 행위는 한국인의 혼을 말살하고 일본인의 정신을 대신 심으려는 한국혼 말살정책이었다.

다음으로는 제도적으로도 한국인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1937년부터 이른바 ‘창씨개명’이라 하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만들어 등록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보통 3자로 되어 있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이름을 보통 4자인 일본식으로 개명토록 하였다. 만일 일본식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취학, 취업, 우편물 이용 등의 공공생활을 규제하거나 신체적 학대를 가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한국인 전통과제도의 말살이었다.

다음은 언어 차원의 민족말살이다. 병탄이후 학교에서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더니 점차 강화하여 일본어 교과서를 사용하고, 한국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만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평상시에도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여, 어린이들에게 매 달 일정량의 표를 나누어 주고 한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 표를 서로 따먹도록 하여 경쟁시키고 상벌을 가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일반인에게도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 하계활동 등을 통제하고 반대로 일본어 강습소를 전국에 설치하여 일본어를 가르쳤다. 민간인의 민원서류 등에도 모두 일본어를 사용토록 강제하였다. 또한 한글로 된 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 잡지(신동아)를 폐간시키는 등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정책에 한글학자 등은 문화적 저항운동을 하였다. 이에 일제는 한글학자들을 체포 투옥하여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발생하였다(1942). 민족혼이 깃든 민족 언어 말살로 한국인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본은 한국 역사도 말살시키고자 하였다.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분열적이고 의타적인 민족이며 나약하여 사대정신이 강한 민족이며, 외침을 많이 받은 열등민족이라고 비하하였다. 또한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그래야 안전하다는 식의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주었다. 종국에는 한국사 교육을 폐지하고 본국사(일본사) 교육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민족사학자들의 학술단체인 진단학회()는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역사 연구를 꾸준히 해나갔다. 조선총독부는 이를 불순하게 여기고 해산토록 강요하여 결국 1942년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 밖에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착취하는 병참기지로 사용하였다. 인적자원 착취로는 징병, 징용, 동원 등을 들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확대되자, 한국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도’를 제정하여 한국인 학생 4500여 명을 지원병 형식으로 전쟁터에 투입하였다. 1944년 전쟁이 어렵게 되자, 보다 강력한 징병제도를 실시하여 패전 때까지 20만여 명을 전쟁터에 내몰았다. 한편, 젊은이들을 전쟁을 지원하는 일터에 투입하였는데, 중일전쟁으로 전쟁이 확산되자 1939년에 ‘국민징용령’을 발하여 한국인 청장년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다.

태평양전쟁 이후에는 징용 영장에 의한 인력 모집이 제대로 되지 않자, 트럭을 몰고 다니며 거리나 일터에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갔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잡혀가는 경우도 있고, 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망가 목숨을 건지는 경우 등 비애가 많았다. 인력동원에는 성별 나이에 무관하게 마구잡이로 동원하여 일터로 내몰았다. 중학생은 물론 국민학생까지도 ‘근로보국’ ‘근로동원’이라는 이름으로 잡아가서 군사 시설 공사장으로 투입하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공포하여 12 ~ 20세의 젊은 여성까지도 잡아가 군수공장에서 노역시키고 일부는 동남아시아 전쟁터로 투입하여 ‘군대위안부’라는 성노예로 학대하여 세계 역사에 유래없는 잔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전쟁물자로 사용하기 위해 각종 지하자원, 기름, 놋쇠그릇, 곡식 등을 약탈해갔다. 총알, 대포를 만들기 위해 가정용품인 놋쇠수저까지 약탈하고, 비행기용 온갖 기름 대체유류를 마구잡이로 수탈해갔다.

그러나 민족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애국자 애국민족은 그들의 눈과 손을 피해 우리의 민족성을 보존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민족을 지켰다. 
<류재택> 
ㅋㅋ 아 난 누구누구라고 이야기도 안했느데 알아서 오내 ㅋㅋㅋ ㅄ들 ㅉㅉ 왜 찔리냐 ? 내 글의 자위글 이라니, 너님들은 자위글이 아닌가보지? 지내들끼리 듣기 좋은 소리 하고 지내들기 댓글놀이 하며 그런걸 보면 너희는 매일 자위글을 쓰는구나 힘도 좋아 ㅄㅋㅋㅋㅋ 표현도 아주 저질이야 ㅋㅋ 자위가 뭐야 자위가 ㅋㅋ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분열적이고 의타적인 민족이며 나약하여 사대정신이 강한 민족이며, 외침을 많이 받은 열등민족이라고 비하하였다. 또한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그래야 안전하다는
백과사전에 나오는 내용이야 잘봐둬 ㅄ들아 이게 우리한태 심어진 민족말살정책이야 너희들 글 보면 이거에 해당 안되는게 없어, 출저가 중요치 않다는건 병신들아 이미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기 때문이야. 저걸 통해서 뭘 증명하고자 하는게 아니라고 작금에 사태를 다시상기 시켜 보자는거지, 난 인명, 단체 어떤것도 언급하지 않었어 너네가 떳떳하면 이런거 관심가질 필요도 없겠지
지금니네들이 이렇게 열성적인건 저기에 찔리는게 있고 어떻게든 합리화할려는 거지 ㅉㅉ 너네 말대로하면 자위질이나 하는거지 현 상태를 잊고 반성은 커녕 출저 타령만 하고있지 . 일제의 잔제들 ㅉㅉ

 

요약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뿌리를 말살하려 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

본문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을 강제 병탄()한 후, 강력한 식민지 탄압정책을 채용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 ‘헌병경찰정치’라 하여 헌병경찰을 전국에 배치하여 한국의 민족운동을 탄압하고 통제를 강화하였다. 그러다가 3·1 독립운동이 발생한 후로는 정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식하고 유화정책을 폈다. 즉, 한국인의 문화생활이나 교육 등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모두가 식민통치의 한 수단일 뿐, 그들의 식민지 통제정책의 근본에는 변함이 없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본 군국주의는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전쟁에 몰입하게 되었다. 1931년에 만주사변(滿)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으며, 1941년에는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미국의 하와이, 동남아시아 등을 공격하였다. 전쟁으로 국력의 소진을 들어내면서 그들은 식민지 통치에 새로운 마각을 들어냈다. 즉, 한국을 전쟁물자 보급창으로 사용하려고 하여 이른바 ‘병참기지화’정책을 펴나가면서, 이를 위해서 식민지를 아예 일본의 일부로 만들려는 무서운 ‘민족말살정책’을 수행해나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있는 것보다는 한국인도 일본인과 똑같은 동일국민 내지는 동일민족의 처지로 개조할 필요가 있었다.

식민통치 제2기에 해당하는 1919 ~ 1931년 사이에 일본과 한국, 만주를 융화하여 서로 가깝게 지내자는 의미로 내선융화( 일본과 조선이 융화해야 함), 선만일여(滿 조선과 만주가 하나와 같음), 일시동인( 일본과 조선이 동질성을 가짐) 등의 조금은 부드러운 강령을 내세웠다. 그러나 제3기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정책을 좀 더 강화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32년부터 《조선사()》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동일민족이라는 동조동근론()을 주장하고 내선일체( 일본과 조선은 하나임)설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일본민족과 한민족은 시조신인 ‘천조대신’()의 적자과 서자로서 하나의 조상을 가진 같은 민족이라고 역사를 날조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인을 ‘황국신민화()하려고 하여, 일본 왕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였다. 전국에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매일 정오에 신사를 참배토록 하고, 거기서 황국신민서사()를 선서하도록 하였다. 한편,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절을 하라고 강요하여 이른바 동방요배()를 실시토록 하였다. 나아가 모든 가정집에는 카미타나()라고 하는 신이 들어있다는 상자를 만들어 모시고, 거기에 수시로 경배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일체의 행위는 한국인의 혼을 말살하고 일본인의 정신을 대신 심으려는 한국혼 말살정책이었다.

다음으로는 제도적으로도 한국인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1937년부터 이른바 ‘창씨개명’이라 하여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만들어 등록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보통 3자로 되어 있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이름을 보통 4자인 일본식으로 개명토록 하였다. 만일 일본식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취학, 취업, 우편물 이용 등의 공공생활을 규제하거나 신체적 학대를 가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한국인 전통과제도의 말살이었다.

다음은 언어 차원의 민족말살이다. 병탄이후 학교에서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더니 점차 강화하여 일본어 교과서를 사용하고, 한국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만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평상시에도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여, 어린이들에게 매 달 일정량의 표를 나누어 주고 한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 표를 서로 따먹도록 하여 경쟁시키고 상벌을 가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일반인에게도 한글을 가르치는 야학, 하계활동 등을 통제하고 반대로 일본어 강습소를 전국에 설치하여 일본어를 가르쳤다. 민간인의 민원서류 등에도 모두 일본어를 사용토록 강제하였다. 또한 한글로 된 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 잡지(신동아)를 폐간시키는 등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정책에 한글학자 등은 문화적 저항운동을 하였다. 이에 일제는 한글학자들을 체포 투옥하여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발생하였다(1942). 민족혼이 깃든 민족 언어 말살로 한국인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본은 한국 역사도 말살시키고자 하였다.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분열적이고 의타적인 민족이며 나약하여 사대정신이 강한 민족이며, 외침을 많이 받은 열등민족이라고 비하하였다. 또한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그래야 안전하다는 식의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주었다. 종국에는 한국사 교육을 폐지하고 본국사(일본사) 교육을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민족사학자들의 학술단체인 진단학회()는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역사 연구를 꾸준히 해나갔다. 조선총독부는 이를 불순하게 여기고 해산토록 강요하여 결국 1942년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 밖에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착취하는 병참기지로 사용하였다. 인적자원 착취로는 징병, 징용, 동원 등을 들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확대되자, 한국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제도’를 제정하여 한국인 학생 4500여 명을 지원병 형식으로 전쟁터에 투입하였다. 1944년 전쟁이 어렵게 되자, 보다 강력한 징병제도를 실시하여 패전 때까지 20만여 명을 전쟁터에 내몰았다. 한편, 젊은이들을 전쟁을 지원하는 일터에 투입하였는데, 중일전쟁으로 전쟁이 확산되자 1939년에 ‘국민징용령’을 발하여 한국인 청장년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다.

태평양전쟁 이후에는 징용 영장에 의한 인력 모집이 제대로 되지 않자, 트럭을 몰고 다니며 거리나 일터에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갔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잡혀가는 경우도 있고, 트럭에서 뛰어내려 도망가 목숨을 건지는 경우 등 비애가 많았다. 인력동원에는 성별 나이에 무관하게 마구잡이로 동원하여 일터로 내몰았다. 중학생은 물론 국민학생까지도 ‘근로보국’ ‘근로동원’이라는 이름으로 잡아가서 군사 시설 공사장으로 투입하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공포하여 12 ~ 20세의 젊은 여성까지도 잡아가 군수공장에서 노역시키고 일부는 동남아시아 전쟁터로 투입하여 ‘군대위안부’라는 성노예로 학대하여 세계 역사에 유래없는 잔악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전쟁물자로 사용하기 위해 각종 지하자원, 기름, 놋쇠그릇, 곡식 등을 약탈해갔다. 총알, 대포를 만들기 위해 가정용품인 놋쇠수저까지 약탈하고, 비행기용 온갖 기름 대체유류를 마구잡이로 수탈해갔다.

그러나 민족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애국자 애국민족은 그들의 눈과 손을 피해 우리의 민족성을 보존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민족을 지켰다. 
<류재택> 
ㅋㅋ 아 난 누구누구라고 이야기도 안했느데 알아서 오내 ㅋㅋㅋ ㅄ들 ㅉㅉ 왜 찔리냐 ? 내 글의 자위글 이라니, 너님들은 자위글이 아닌가보지? 지내들끼리 듣기 좋은 소리 하고 지내들기 댓글놀이 하며 그런걸 보면 너희는 매일 자위글을 쓰는구나 힘도 좋아 ㅄㅋㅋㅋㅋ 표현도 아주 저질이야 ㅋㅋ 자위가 뭐야 자위가 ㅋㅋ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분열적이고 의타적인 민족이며 나약하여 사대정신이 강한 민족이며, 외침을 많이 받은 열등민족이라고 비하하였다. 또한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며 그래야 안전하다는
백과사전에 나오는 내용이야 잘봐둬 ㅄ들아 이게 우리한태 심어진 민족말살정책이야 너희들 글 보면 이거에 해당 안되는게 없어, 출저가 중요치 않다는건 병신들아 이미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기 때문이야. 저걸 통해서 뭘 증명하고자 하는게 아니라고 작금에 사태를 다시상기 시켜 보자는거지, 난 인명, 단체 어떤것도 언급하지 않었어 너네가 떳떳하면 이런거 관심가질 필요도 없겠지
지금니네들이 이렇게 열성적인건 저기에 찔리는게 있고 어떻게든 합리화할려는 거지 ㅉㅉ 너네 말대로하면 자위질이나 하는거지 현 상태를 잊고 반성은 커녕 출저 타령만 하고있지 . 일제의 잔제들 ㅉㅉ

 

by 교육문제 | 2010/10/22 09:29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